사실상 싱글이긴 하지만, 두 곡이 담겨 있어서 EP로 분류된.... 그 앨범이 며칠 전에 나왔습니다. 스포티파이 또는 유튜브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컨셉

지난 1년간 다양한 감정을 겪으며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불확실성’이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주로 미래, 혹은 인간관계와 결합하여 끊임없이 혼란을 안겨주었다. 이번 앨범에는 두 곡의 노래를 통해 세 가지 측면의 불확실성을 담아냈다.

두 곡의 접점은 거의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고민을 하면서 만들어진 노래이며, 그렇기 때문에 첫번째 곡에서의 고민이 해결되어야만 두번째 곡에서의 고민이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진다든지. 그런 모순들이 좀 존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별로 특별하지 않은 경험을, 특별하게 포장한 것에 가깝습니다. 살면서 불안이라는 감정을 강하게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결국 불안은 불확실성으로부터 유래합니다. 걱정도 마찬가지에요. 이제 돌이켜보면,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미래와 같이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관측할 수 없는 것" 은 당연하게도 어쩔 수 없이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이 곡들을 만들 당시의 저는 너무나도 무너져 있어서, 마치 저만이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마냥 울부짖으면서 가사를 써내려갔습니다. "이런 감정들, 그러니까 미래와 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것은 모두가 느끼는 거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겠지?" 같은 전략적인 사고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누군가 들어주었으면 해서" 가 아니라 "그냥 토해내고 싶어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Lonely Light

Lonely Light의 경우 정말 공을 많이 들인 작업물이었습니다. 곡을 잘 들어보시면, 여태껏 연이나가 추구해왔던 "퓨전 국악" 이라는 스타일을 사용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낙심증》 까지 꾸준히 사용되었던 해금과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국악적 사운드는 이 곡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대신 여러 줄의 코러스 트랙과 오케스트라가 그곳을 메꿉니다.

며칠 전 레슨 선생님과의 합방에서 이 곡의 가사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 곡의 코러스 부분 마지막에 등장하는 문장들, 그러니까 나였던 빛이 꺼질 때까지, 세상이 집어삼킬 때까지, 쉼 아닌 쉼이 끝날 때까지, 우울이 나를 놓을 때까지 의 네 구절은, "앞의 2구절과 뒤의 2구절로 나뉘어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일관된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가사를 읊조리다가, 어떠한 외부적 자극 없이 사고를 전환할 수 있는 힘 따위 애초에 만성 우울증 환자에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곡이 진행될수록 더욱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TMI지만, 제가 겪은 많은 우울삽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연의 가장 낮은 곳으로 무기력하게 빨려들어가다가, 결국 어떠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강제로 끌어올려지는 방법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이 겅혐이 어느 순간부터는 나타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만성적인 우울과 부정사고가 나를 감싸고, 나 자신의 회복탄력성과의 중력적 평형을 이루고 있을... 뿐입니다.)

방송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국 이런 감정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전제이며, 우울이 나를 놓을 때까지 란 결국 인생의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극단적 선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요, 만성적인 질환, 예컨대 당뇨가 있는 사람이 평생 당뇨와 함께 살아가듯이 우울과 함께 살아남아, 평범한 마지막을 맞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편곡 상에서도, 브릿지에서 오케스트라가 나오기 시작해서 계속해서 악기가 더해지고 폭풍처럼 몰아쳐 가며 마지막 코러스를 맞는 것은, 자신의 어두운 감정을 건드리고 마주하는 것이지 감정이 정리되고 회복되는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몰아치는 와중에도 어떤 상승 기류가 느껴지는 편곡이 있습니다만 이 곡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우울증 환자들이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세지 같은 걸 주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이 노래는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라고 안심시켜 주는 기능을 할 것 같습니다.

널 많이 지웠는데 가끔씩 네가 스쳐

...모든 의미로 반항적인 곡입니다. 저 혼자 작업해서 제출한 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믹싱 상 미비한 구석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트랙을 다루기는 무서워서 피아노 1트랙으로만 작업했습니다.

눈치채실 분은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참 지독한 회피형입니다. (뭔가 이미지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마땅한 것이 안 나오네요...) 저 자신이 어디에서도 결국엔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많은 경험을 통해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지는 않지만, 간혹가다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병원에서 상담도 해 보고, 같은 이유에서 자기장 치료도 받아보고, 자기장 치료를 받으면서 60BPM에 맞춰 스윙 리듬을 체화하는 연습도 해 보고, 스윙 리듬에 맞추어 크로매틱도 해 보고 블루스도 연주해 보고.... 아니 이건 아니지만 아무튼 저는 분명히 치료 의지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최근 주변의 많은 분들이 도와 주셔서 개선이 되고 있습니다.

이 곡의 앞쪽 가사 아침이 있다면 저녁도 있고-조금만 더 울다가 다시 널 보낼 수 있길 의 구절은 그런 것들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습니다. 화자의 추악한 면을 드러내기 보다는, 이 관계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화자에게 준 상처 쪽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브릿지 이후의 가사 나를 돌아봐 주기를-환상 너머로만 있어 줘 에서 화자 자신애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어떻게 보면 일관적이지 못한 가사입니다만, 어떻게 보면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에 언제나 존재하는 양가감정일 수 있죠.

제가 이런 가사까지 쓰게 만들었던 장본인? 과는 다 풀고 잘 지냅니다. 결국 이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해였어요. 그래서 이 트랙은, 영원히 "방황하던 시절의 반항적인 트랙" 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결론

그래서 저는? 오리지널 곡 여섯 개 있는 버튜버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힘내겠습니다. 저의 활동을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